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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 결말포함 줄거리 + 작품해석 / 북튜버 사월이네 북리뷰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영원회귀 / 초인 / 위버멘쉬 / 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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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요약 및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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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읽기 – 머리말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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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해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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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해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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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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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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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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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요약 및 서평

1. 작가소개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5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나움부르크로 이사하였다.

포르타 김나지움 시절에는 음악과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하였고, 1864년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古典文獻學)을 배웠으나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시절 동안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고, 바그너와 음악을 통해 깊은 관계를 맺었다.

69년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스승 리츨의 추천을 받아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지자 위생병으로 종군하였으나 병에 걸려 제대한 뒤 평생 병고에 시달리는 몸이 되었다. 당시 유명한 작곡자로 알려졌던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으며, 특히 비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를 듣고 매혹된 나머지 처녀작인 <비극(悲劇)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die, 1872)>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비극의 정신이 진실한 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의 두 가지 원리로 그리스비극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을 현대에서 부흥시킨 것이 바그너의 음악임을 논하여 그의 신예술운동을 지원하려 하였다. 뒤이어 발행된 <반(反)시대적 고찰 (Unzeitgemsse Betrachtungen, 1873-76)> 4편은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독일 국민과 문화에 통렬한 비난을 가하는 한편 유럽문화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천재(天才)를 위대한 창조자로서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1편은 헤겔학파의 신학자 슈트라우스의 <교양(敎養)을 가진 속물(俗物)>에 대한 공격으로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2편은 역사를 기념비적·골동품적·비판적인 3종류로 구분한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이었다.

3편은 쇼펜하우어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니체 자신의 실존적 결의의 표명이기도 하다.

4편은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서 공연한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관한 찬사이다. 그러나 이 저술을 계기로 바그너와 절교하였으며, 이리하여 천재적인 재질에 의하여 새로운 게르만적 헬레니즘문화를 세우려고 한 낭만적 이상은 무너졌다.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79년 대학에서 퇴직하고 알프스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해변을 전전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사색을 계속하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78-80)> <서광 (Morgenrte, 1881)> <기쁜 지혜 (Die frhliche Wihssenschaft, 1882)>등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들은 잠언(箴言)과 사상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종래의 낭만주의를 파괴하고 실증주의적·심리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다. 83-85년에 걸쳐서는 전에 알프스 산중에서 깨달은 <영겁회귀> 사상을 기반으로 한 <초인(超人)>의 이상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1883-91)>를 저술하였다.

이 저서에 니체의 사상이 상징적으로 모두 표현되고 있으나, 이 추상성에 불만을 품고 구체적 논문 식으로 해설한 <선악(善惡)의 피안 (Jenseits von Gut und Bse, 1886)>을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는 고귀한 정신적 귀족의 육성을 주장하고 장래의 위대한 입법자를 암시하는 한편 퇴폐적인 근대의 여러 현상과 단순히 객관에만 치우치고 있는 과학정신, 동정(同情)에 기반을 두었다는 그리스도교적 도덕, 역사의식의 과잉 등을 예리하고 독특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 후 <도덕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가 유럽 윤리사상의 비판서로서 출판되었으며, 이때 이미 <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가 준비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사망 후에 유고(遺稿)만이 수집되어 출판되었다.

88년에는 <바그너의 경우> <우상(偶像)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안티 그리스도> <니체와 바그너>등이 저술되었다. 그 중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89년 1월 정신착란 증세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동생의 간호 아래 여생을 보냈다.

니체는 근대유럽의 정신적 위기를, 일체의 의미와 가치의 근원인 그리스도교적 신의 죽음, 즉 <신은 죽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사상적 공백상태를 새로운 가치창조에 의해 전환시켜 사상적 충실을 기했다. 이리하여 신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겁회귀를, 선(善)과 참(眞)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쁨 대신에 심연(深淵)을 거쳐서 웃는 인간의 내재적(內在的) 삶으로 가치를 전환시켰다.

‘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모든 전통가치의 상실을 선포했다. 그는 유일하게 지지받을 수 있는 인간의 반응은 허무주의적 반응, 즉 신이 없음이며, 삶의 목적과 의미에 관한 문제에는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니체에 따르면, 신의 죽음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을 완성하며 그 본질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원숙한 문장과 함께 주로 문학자들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시대 변천과 함께 사상적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의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그들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었다.

2. 줄거리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훑어보기

차라투스트라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머물렀던 동굴은 아주 높은 곳에 있다. 그곳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보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높다. 깨달음의 장소인 동굴의 높이가 이렇게 높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높이에서 세상을 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의 동굴은 또한 용감하고 긍지를 가진 동물인 독수리의 둥지를 닮았다. 독수리가 절벽 높은 곳에 둥지를 틀어 지상이 동물들이 자기 둥지를 침탈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은 지상의 악덕들이 쉽게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이 책의 핵심 개념과 형식들이 아주 높은 바위에서 떠올랐기 때문에 “인간과 시간을 초월한 6천 피트”라는 주석을 달아 놓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동굴의 높이만큼이나 깊은 곳을 향해서도 여행을 한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별들까지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이”만이 아니라 더없이 깊은 계곡과 물속도 들어가 봐야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높이와 깊이가 반복적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는 고도를 바꾸는 것에 익숙한 여행자다. 처음에 그는 높은 동굴에서 하산해 ‘얼룩소’라는 도시에 도달한다. 제1부는 ‘얼룩소’라는 도시에서 펼친 가르침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제2부에서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비웃음만 산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높은 곳에 있는 자신의 동굴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내공이 더욱 커진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벗들을 찾기 위해 하산을 시작한다. 이번에 그가 향한 곳은 ‘행복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지복의 섬은 그리스의 영웅들이 죽으면 간다는 낙원이다.) 섬에서 많은 경험을 한 차라투스트라. 그러나 제3부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성숙을 위해 고독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벗들을 떠나 동굴로 돌아가려 한다. 그는 섬에서 나와 배를 타고 육지에 오른 후 감람산을 거치고 도시를 지나서 다시 자신이 동굴로 올라온다. 그리고 동굴 속에서 깊은 수련에 들어간다. 제4부에서 그는 다시 한 번 하산과 등정을 반복한다. 물론 이것은 앞서 이루어진 두 번의 하산과 등정 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동굴 속에서 위버멘쉬로의 변신이 임박했을 때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인간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산 아래 쪽으로 내려갔다가 그들을 모두 동굴로 데리고 올라온다.

『차라투스트라』에 나타난 하강과 상승의 반복은 영원회귀의 반복과도 관련이 있다. 반복이라는 형식 자체는 동일해 보이지만 반복이 있을 때마다 차라투스트라에게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반복을 거칠 때마다 건강한 신체로 변해간다. 또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것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세계를 여러 가지 시각에서 통찰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3. 주요 개념 정리

* 초인(超人 ubermensch) = superman : 인간이 초극(超克)화 된 모습. 인류의 목표가 없어진 다음에 나타나는 그에 대신할 최고의 가치로서의 이상. 초인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개념이다.

* 니힐리즘 : 라틴어의 ‘무(無)’를 의미하는 니힐(nihil)이 그 어원으로, 허무주의를 이르는 말

하지만, 니체의 ‘니힐리즘’은 일반적 의미의 니힐리즘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입장에서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권력을 쇠퇴시키는 그리스도교 도덕이나 불교 도덕을 수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하여 배척하고, 삶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기성가치의 전도(顚倒)를 지향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제창하였다.

* 영겁회귀 : 니힐리즘의 최고 형태. 무한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유한한 물질이 서로 만나 똑같은 현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 지향해야 할 목표도 도달할 장소도 없이 세계는 영원히 생성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회귀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최고의 무의미함을 견딜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 운명애(運命愛): 아무리 가혹한 인생이 여러 번 되풀이되어도 ‘이것이 인생이었던가. 좋아, 다시 한 번.’하고 결의를 다지는 긍정적인 태도.

* 권력의지: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에 대한 대안으로 만들어 낸 말. 쇼펜하우어는 ‘생의 의지’를 생에는 고통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모든 존재들은 계속 생을 유지하려는 자기 보존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사용했다. 니체는 ‘생의 의지’와 연관된 염세주의에 반대하면서, 생을 ‘권력의지’, 즉 세계에 반작용하기보다는 세계에 작용을 가하는 생명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열렬한 충동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말로 바꾸자면, ‘권력’보다는 ‘능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 르상티망 [ressentiment] : 인간 본성의 비합리적 측면, 특히 격정(激情)의 구실을 중시한 니체는 권력의지에 의해 촉발된 강자의 공격욕구에 대한 약자의 격정을 복수감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말을 빌면, 그리스도교의 ‘사랑’도 사실은 증오감 ·복수감의 숨겨진 정신적 태도에 지나지 않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도 실천력이 부족하거나 결여된 것을 상상(想像)의 복수로 갚는 인종(忍從)과 관용(寬容)의 모럴에 지나지 않는다.

* 관점주의[perspectivism] : 지식이 항상 특정한 관점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태도이다. 즉 순수한 지각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점 없는 지식이란 특정한 관점 없이 본다는 것만큼이나 모순적이다. 관점주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관점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관점이란 대상을 가능한 모든 관점에서 본다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4. 주요 구절과 해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들여다보기

(1)신은 죽었다.

신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너희에게 말해주겠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우리 모두는 신의 살해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버릴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모든 지평선을 지워버릴 스펀지를 주었는가? 태양으로부터 이 지구를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지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모든 태양으로부터 떠나가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광인의 울부짖음은 사람들이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든 웬 ‘미친놈’이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거라 생각했다. 광인은 들고 있던 등불을 내동댕이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무 일찍 왔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계속 중이며 방황 중이다. 그것은 아직 인간의 귀에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번개와 천둥도 시간이 필요하다. 별빛도 시간이 필요하다.

저 밤하늘에 보이는 별빛이 수천 년 전이 것이었듯이 ‘신의 죽음’도 전달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 인간에게 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생각해보면 신의 죽음에 훨씬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만물은 신에 의해서 그 존재를 보장받으며, 그 가치는 신이 뜻에 비추어서 평가된다. 다시 말해서 신은 만물이 존재하는 토대이고 그 가치의 기준이다. 그래서 광인은 신의 죽음으로 지평선이 지워졌으며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하늘과 땅을 나누는 경계선이 지워지고, 지구로 하여금 안정적으로 공전하도록 단단히 붙들어 주고 있던 태양이 사라져 버렸다. 이때의 신이 죽음은 만물을 존재하게 해주는 어떤 초월적 실체의 사라짐이자, 선악(善惡)이나 미추(美醜)를 판단케 해주는 절대적 가치 기준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지상에 아직도 경배할 것이 있다는 사실에 나의 늙은 마음은 기뻐 날뛴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늙고 경건한 교황의 이 심정을 용서하라! <나귀제>

– 나귀를 숭상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그가 그렇게 기쁨으로 들떴던 이유. 그것은 바로 신앙이다. 신은 죽었지만 신앙이 남았다. 남아 있는 신앙은 계속 경배할 대상을 찾는다. 그것이 나귀이면 어떻게 금송아지면 어떻겠는가. 니체는 신보다 신앙이 더 오래된 것이고 더 오래갈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 같다. 신이 있기 때문에 신앙이 생긴 게 아니라 신앙 때문에 신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2) 너희는 너희의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시장은 화폐가 풍기는 악취를 따라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꼬이는 곳이다. 예로부터 새로운 가치의 발명자들은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떨어져서 살았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생겨난다. <시장터의 파리들에 대하여>

–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곳이 시장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시장은 오늘날 가치가 규정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치는 얼마나 많은 화폐와 교환될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원래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시장에서 비싼 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싼 값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고귀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왜 그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부를 축적하지만 그들은 점점 가난해진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며 그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의 지렛대인 돈을 원한다. 이들 잽싼 원숭이들이 어떻게 기어오르는가를 보라! 그들은 앞을 다투어 남을 타고 넘어 기어오르다가 모두 진흙과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들은 모두 왕좌에 오르려고 한다. 마치 행복이 그 왕좌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들 모두는 미치광이들이요, 기어오르는 원숭이들이자 너무도 격렬한 자들이다. 여기에서는 악취가 난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 시장을 통해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한결같다. 그들은 똑같은 행복을 얻고자 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더 많은 화폐를 얻는 것이다. 화폐가 모든 가치의 척도이므로 더 많은 화폐를 얻는 것이 곧 더 많은 가치를 얻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그들은 삶의 목표를 정하지도 못하며, 진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배자들이 오늘날 무엇을 두고 지배라고 부르는지를 보고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귀가 먹고 눈이 먼, 그리고 벙어리가 된 불구자처럼 살아왔다. 그것은 권력을 추구하는 천민들, 글이나 갈겨쓰는 천민들, 그리고 쾌락이나 쫓는 천민들과 함께 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천민들에 대하여>

– 니체 철학이 전제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나 노예들을 부려먹으며 안락한 생활을 누린 귀족들을 정당화해 준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믿기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학자들이 그런 말을 자신의 철학적 교양을 뽐내는 양 하고 있다. 그러나 니체는 강자나 귀족에 대한 자신의 언급이 오해되는 것을 보며, 말을 이해 못하는 “얼간이들을 위해 내가 말하는 귀족들은 귀족명부에나 나오는 그런 귀족들이 아님을 밝혀둔다.”고 했다. 그는 ‘귀족’이니 ‘주인’이니 하는 말에 전혀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말하는 강자나 귀족의 유형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오늘날의 지배자들은 결코 강자도 귀족도 아니며, 권력과 자본의 노예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3) 사랑을 가르친다, 벗을 가르친다.

너희의 결혼. 나쁜 결합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희들은 너무 빨리 맺는다. 그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결혼 파기가 뒤따르는 것이다. 결혼에서의 왜곡이나 사기보다는 결혼 파괴가 낫다! “나는 나의 결혼을 파괴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결혼이 나를 파괴했다.”고 내게 말하는 여인이 있었다.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

– 사람들은 결혼을 사랑의 결실처럼 말한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사랑을 변질시킨 결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으리라. 차라투스트라는 결혼의 위험성을 자주 환기시켰다. 언젠가 니체는 바그너의 작품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해서 대단한 분노를 표시한 적이 있다. 바그너는 결혼의 구속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혼이 방랑자를 구원한 사랑이라도 되는 양 표현했다. 한 여성이 그 방랑자를 숭배하고 사모해서 결혼하는 것을 보고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은 무엇을 가져왔는가? 방랑자가 방랑하기를 멈춘 것이다. 바그너는 그것을 구원이라 했지만, 사실 그는 파멸한 것이다.” 결혼이 긍정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때의 사랑이 훨씬 풍만한 것이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좋은 결혼을 “본인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 하나를 산출하기 위해 짝을 이루려는 두 사람의 의지”이며, “더욱 높은 신체를 창조하는, 창조하는 자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출산된 아이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면서 동시에 변신된 그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혼을 통해 그들은 새롭게 태어나야한다. 그들 자신이 그들의 아이여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능력의 확장이며 새로운 변신이다. 좋은 결혼은 서로를 좋은 친구로서 계속 사랑하게 한다. 그러나 보통의 결혼은 이와는 정반대다.

많은 너무도 많은 자들이 결혼이라고 부르는 것, 아, 그것을 나는 어떻게 부를까? 아, 짝을 이루고 싶어 하는 영혼의 궁핍함이여! 아, 짝을 이루고 싶어 하는 영혼의 더러움이여! 아, 짝을 이루고 싶어 하는 영혼의 가엾은 안일함이여! <아이와 결혼에 대하여>

– 무언가 서로에게 줄 것이 있어, 자신에게 넘쳐나는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받고 싶은 것이 있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이다. 풍성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서로를 선물하는 친구로 만들어주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상대방을 구속하는 가시 울타리로 자라난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견디어내지 못하며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너희들은 너희의 이웃을 유혹하여 사랑하도록 만들고, 그들의 과오로 자신을 미화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예찬하려 할 때 증인을 끌어들인다. 너희들에 대해 좋게 생각하도록 그 증인을 유도하고 나서 너희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떤 이는 자신을 잊기 위해 이웃에게 달려간다. <이웃 사랑에 대하여>

– 기독교의 가르침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그 타인 지향적인 헌신의 정체를 꿰뚫어라”고 말한다. 이웃 사랑에는 항상 주변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과 결탁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면 여섯 번째 사람은 항상 매장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먼 이웃을 ‘왕따’시키는 것이 이웃 사랑의 위험이다. 그렇게 패거리를 짜고 군중을 형성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히려 이웃에 등을 돌리고, 더없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권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더 숭고한 것은 먼 곳에 있는 사람과 앞으로 오게 될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그렇다면 너는 그(차라투스트라)가 진리를 말했다고 믿는가? 너는 왜 그것을 믿는가?” 그 제자가 답했다.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믿습니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는 머리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믿음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나에 대한 믿음은.” <시인에 대하여 >

– 차라투스트라가 가르침을 펴다보니 어느덧 자신을 사랑한다고 따라다니는 ‘팬클럽’이 생겨났다. 차라투스트라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추종 세력들이 나타난 것이다. 신앙을 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신도들처럼,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도 그에 대한 사랑을 신앙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란 사랑이 아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결코 우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을 사랑하려거든 우상을 파괴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신에 대한 사랑으로 말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그는 신의 죽음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바치지 않았던가.

나의 제자들이여, 이제 나 홀로 나의 길을 가련다. 너희들도 이제 한 사람 한 사람 제 갈 길을 가라!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권하거니와 나를 떠나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에 저항하여 스스로를 지켜라. 더 바람직한 일은 차라투스트라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일이다! 그가 너희들을 속였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 너희들은 나를 숭배한다. 그러나…… 신상에 깔려 죽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너희들은 차라투스트라를 믿고 있다고 말하려하는가? 그러나 차라투스트라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너희들은 나의 신자다. 그러나 신자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너희들에게 명하노니 이제 나를 버리고 자신을 찾도록 하라. 너희가 모두 나를 부인하고 나서야 나는 다시 너희들에게 돌아오리라. 언젠가 너희들은 나의 벗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희망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선사하는 덕에 대하여>

– 차라투스트라를 믿으려거든 차라투스트라를 의심하라. 차라투스트라를 따르려거든 먼저 그에게서 떠나라. 차라투스트라가 구하는 것은 신도가 아니라 친구이다.

나는 친구가 친구에게 베풀 듯 즐겨 베푼다. 낯선 사람들과 가난한 사라들은 내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를 직접 따도 좋다. 그들은 덜 부끄러울 것이다. 다만 거지만은 남김없이 몰아내라! 참으로 그들에게는 줘도 화가 나고 주지 않아도 화가 난다. <연민의 정이 깊은 자에 대하여>

–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연민의 정이 깊은 자’로 부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신의 죽음이라는 선물을 들고 온 이유도 결코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연민을 느껴 인간을 구원하려 온 자가 아니다. 그는 어느 날 제 몸에서 일어난 충일함을 못 이겨, 저 하늘에 뜬 태양처럼 제 것을 저 모든 것들에게 내놓기 위해 선물을 들고 온 자였다. 왜 연민이문제일까? 연민이나 동정은 그것을 받는 자를 비참하게 만든다. 물론 그런 몹쓸 짓을 하고도 창피한 줄 모르는 박애주의자들이 널려 있고, 그런 몹쓸 짓을 당하고도 여전히 손을 내미는 빈곤한 영혼들이 널려있다. 연민이나 동정을 보이는 자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지를 만든다. 위대한 사랑은 그 자신이 사랑할 친구들 창조한다. 선물은 군주도, 노예도, 거지도 만들지 않으며 오직 친구를 만든다. 그것이 위대한 사랑을 창조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벗에 대해 가르치며, “벗을 원한다면 그를 위해서 기꺼이 전쟁을 일으킬 각오라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 벗을 사랑한다면 벗과의 전쟁을 통해 그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선물은 못난이들을 동정하는데 쓰이는 게 아니라 파괴하는 데 쓰인다. 못난이들이 완전히 새로운 자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들을 공격한다. 친구가 된다는 건 그 진리를 섬기는 일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4) 삶을 사랑하라

“생은 고통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자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너희들은 이제 끝내도록 하라! 고통에 불과한 생을 끝내도록 하라! 곳곳에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리고 이 대지는 죽음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아니면 “영원한 생명”에 대한 설교를 들어야 하는 자들로. 아무래도 좋다. 그런 자들이 저편의 세계로 서둘러 떠나버리기만 한다면야! <죽음의 설교자들에 대하여>

– 차라투스트라는 죽음의 설교자들을 ‘결핵에 걸린 영혼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떠나 가상 세계를 창안하고 그곳에 확실하고 영원한 진리를 두는 것도 미친 짓이고, 가상 세계에서 이루어질 끔찍한 보복을 상상하며 이 세계를 견디는 것도 미친 짓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들이 자신들의 소원대로 빨리 이 세상을 뜨기를 바란다.

창조하는 자가 있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 하며 많은 변신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허다하게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너희들은 덧없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는 사람이 된다. 창조하는 자 스스로 다시 태어날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산모가 되어야 하고 산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행복의 섬에서>

– 니체는 삶에 대한 사랑을 운명애라고 불렀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해 주는 것이다. 물론 그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이 같은 삶에 대한 사랑은 종종 크나큰 범죄 행위로 비난받는다. 차라투스트라가 ‘선하고 의로운 자’들로부터 비난받듯이, 죄의식과 낡은 습속들로부터 삶을 해방하는 과정은 사악한 범죄 행위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는 자는 그의 망치가 파괴 도구이기 이전에 창조의 도구이고 사랑의 도구임을 알고 있다.

(5) 새로운 우상인 국가를 조심하라

국가가 어떻게 이들 많은,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꼬드기는지를 보라! 어떻게 국가가 그들은 삼켜서 씹고 되씹는지를! “이 땅에서 나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나는 질서를 부여하는 신의 손가락이다.” 국가라는 괴물은 이렇게 외쳐댄다. 순진하고 귀가 얇은 자와 근시안인 자만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다! (많은 영웅들도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 국가는 마치 그 스스로가 보편적 선이고 정의인 양 행세한다. 실레로는 특정한 계층, 특정한 계급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혹은 그 스스로가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회로부터 초연한 양 거드름을 피운다. 근대 국가는 중세처럼 종교와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다. 낡은 신에 대한 믿음이 위태로워지자 근대 국가는 교회에서 발을 빼버렸지만 국가가 자신을 감싸주었던 신성한 베일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는 여전히 자신을 신의 대리자인 것처럼 나타낸다. 교회가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면서 ‘신을 위한 성전’이라 말하듯이, 국가 역시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이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가를 설득한다. 수많은 전사들과 영웅들이 국가의 말에 속아 자기 목숨을 바쳤고, 국가는 이들을 활용해서 애국을 광고해댔다.

(6) 순수한 인식을 꿈꾸는 자들은 음탕하다.

학자들은 아직도 서늘한 그늘 아래 시원하게 앉아 있다. 그들은 무슨 일에서나 관망자로 남기를 원한다. 그리고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계단 위에는 앉지 않으려고 몸을 사린다.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로보고 있는 자들처럼, 그들 또한 기다리며, 다른 이들이 생각해낸 사상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섰다. 그들의 복잡함 앞에 내 단순함은 이야깃거리도 안 되겠군! 그들의 손가락은 실을 꿰는 법, 뜨개질하는 법, 천 짜는 법까지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정신이라는 양말을 뜨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에 대하여>

– 하나의 객관적인 규칙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문제라면 학자는 ‘양말 제조공’과도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양말이 정신적인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학자들이 내뱉는 복잡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 놀라운 직조 기술에 감탄한다. 자기 개념, 자기 가치를 생성시키지 못한 채 정해진 사유체계를 따라가는 학자들은 ‘감아진 대로 풀리며 돌아가는 시계태엽’이나 ‘낟알을 던져 주면 하얀 가루로 만들어 주는 맷돌’과 같다. 비록 그들이 정말 열심히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일을 수행한다고 해도 그것은 훌륭한 시계태엽이나 훌륭한 맷돌로서 그런 것일 뿐이다.

(7) 인간만큼 큰 귀를 보았다.

누군가가 현대인들의 베일과 덧옷, 분칠과 거동을 벗겨버린다면, 너희에게 남는 것이란 겨우 새들이나 놀라게 할 정도의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내 자신으로 말하자면, 나는 참으로 아무 치장도 하지 않은 너희들의 알몸을 보고 놀란 새다. 뼈만 앙상한 것들이 내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자 나는 그곳에서 도망치고 만 것이다. 현대인들이여, 알몸이든 옷을 입었든 간에 나는 너희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교양의 나라에 대하여>

– 차라투스트라는 제 것도 아닌 잡동사니들을 긁어모아 폼을 잡고 있는 모델들이 역겨웠던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에겐 가슴을 펴고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든 현대인의 포즈가 위선으로만 보였다. 다시 차라투스트라에게 물어보았다.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지식을 모은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차라투스트라가 답했다. 박식함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긁어모은 지식들 모두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앎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나는 보았다. 이 사람에게는 눈이 하나 없고, 저 사람에게는 귀가 하나 없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리가 없다는 것을, 거기에다 혀나 코나 머리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내가 사람들과 지내면서 본 것 가운데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것들이다. 나는 훨씬 더 고약한 것들도 보았는데, 그것들 중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역겨워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를테면 하나를 너무 많이 가진 대신에 그 밖에 다른 것은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눈이거나 커다란 주둥이거나 커다란 배 아니면 또 다른 커다란 어떤 것일 뿐이다. 나는 이런 자들을 일컬어 전도된 불구자라 부른다. <구제에 대하여>

– 차라투스트라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인간만큼 거대한 귀’로 표현한 것이다. 무언가 한 가지 능력만 있는 사람들, 그래서 누구는 귀로, 누구는 입으로 알려졌으며, 누구는 눈으로, 누구는 다리로 전문가가 되었다. 물론 전문적으로 한 가지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데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것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한 가지 능력만 키우느라 여러 가지 능력을 퇴화시킨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8)춤추고 웃는 법을 배워라

나는 하늘을 날아갈 준비를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나의 천성이 이러한데 어찌 그것이 새의 천성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나는 중력의 영에 적의를 품고 있는데, 그것만 보아도 새의 천성이 분명하다. 나는 진정 중력의 영에 대해 불구대천의 적의와 으뜸가는 적의, 그리고 뿌리 깊은 적의를 품고 있다. <중력의 영에 대하여>

– 차라투스트라는 이내 알아차렸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려는 비행술의 대단한 적대자가 있음을. 새처럼 가벼워지려는 몸을 천근만근의 무게로 잡아당기고 있는 자가 있음을. 그것은 바로 ‘중력의 영’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날개가 생겨난 이들에게 기대를 건다. 물론 날개가 있다고 해서 바로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시대 자기 삶에 대한 거부만으로는 결코 날 수가 없다. 부정과 거부는 여전히 무거운 자들의 정신이다. 중력의 영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중력의 영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부정과 거부는 금세 반동이나 허무로 돌변할 수 있다. 이제 막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 이들이 꼭 염두 해 두어야 할 것이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부정을 통해 도약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을 아름답게 창조할 수 있다. 자기 삶을 부정하는 자는 탈주할 때 고통의 비명이나 분노의 울분을 토한다.

나는 춤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그리고 내가 나의 악마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악마가 엄숙하며, 심오하며, 장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중력의 영’이다. 그로 인해 모든 사물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분노가 아닌 웃음으로 죽인다. 자, ‘중력의 영’을 죽이지 않겠는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 처음부터 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법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강의는 ‘웃는 법’과 ‘춤추는 법’에서 시작된다. 심각해선 안 된다. 무거워선 안 된다. 웃고 또 웃어라. 춤추고 또 춤춰라. 그것이야말로 중력의 영을 죽이는 일이다.

(9)세상은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들의 탁자다.

“너 지혜의 돌이여! 너는 너 자신을 높이 던졌지만 그러나 모든 던져진 돌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차라투스트라여 너는 정말로 돌을 멀리 던졌지만 그 돌은 네 위로 다시 떨어지리라.” 난쟁이는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몹쓸 병에 지쳐 있는 병자와 같았다……. 내게는 용기라 부르는 것이 있다. 용기는 심연에서 느끼는 현기증까지 없앤다. 사람이 있는 곳 치고 심연이 아닌 곳이 있던가!……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그것도 공격적인 용기는. “그런 게 생이던가? 좋아! 그렇다면 다시 한 번!”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 난쟁이 이야기 요지는 이런 것이다. 아무리 주사위 던져봐라! 그것은 똑같은 것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괜히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던져봐야 네 몸만 상할 뿐이다. 난쟁이가 말하는 동일한 반복, 그것은 법칙이면서 동시에 구속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다행히 그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그는 단순 무식하게 난쟁이에게 덤벼들었다. 완전히 배수진을 친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치고 고통이 없는 곳이 있던가!

생이 그런 거라면 뭐 손해 볼 것 없다! 또 던지겠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태도뿐이었다면 차라투스트라 역시 쉽게 지쳤을 것이다. 주사위 던지기가 놀이가 아니고 반복되는 노동 같은 것이었다면 그 용기도 언젠가는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웃음과 춤을 배울 때처럼 주사위 던지기의 의미 역시 깨우치기 시작했다. 춤을 추면서 더 잘 추게 되고, 웃음을 웃으면서 더 잘 웃게 되듯이, 그의 주사위는 매번 더 높이 던져졌다. 차라투스트라에게 지금 올라가는 주사위의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관심 밖이다. 실해하면 또 하면 되니까…….

(10)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내 방식의 죽음을 권한다. 내가 원할 때 찾아오는 자유로운 죽음 말이다……. 가장 맛이 들었을 때에도 남에게 계속 맛을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신 맛을 내는, 그리하여 마지막 가을날까지 기다려야 하는 운명을 지난 시과도 있다. 그런 사과는 무르익자마자 노랗게 변색되고 주름투성이가 된다.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 인간들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경멸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데 주저했다. 그들은 인간적인 것을 비웃은 것까지만 할 뿐 막상 그것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것에 대한 넘어섬은 역시 인간인 자신들까지 넘어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변신이라는 불확실한 과정에 자신을 내맡기기보다는 뭔가 의지할 것을 찾음으로써 자신을 보존하고 지탱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 차라투스트라의 자기 삶에 대한 긍정은 ‘자기보존’이 아니라 ‘자기극복’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오늘의 나’를 죽여야 ‘내일의 나’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풋과일들만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에 매달린다. 모든 익은 것들은 집착을 버리고 떨어진다. 그것이 더 많은 생명들의 탄생임을 알기 때문이다.

5. 니체의 책들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목차

(1)니체의 책들

비극의 탄생, 음악 정신의 기원 – 1872년

(The Birth of Tragedy, Out of the Spirit of Music)

반시대적 고찰 (총 4부로 구성)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 1873년

(David Strauss, the Confessor and the Writer)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 1874년

(On the Uses and Disadvantages of History for Life)

교육자로서 쇼펜하우어 – 1874년

(Schopenhauer as Educator)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 1876년

(Richard Wagner in Bayreuth)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정신을 위한 책 – 1878년

(Human, All to Human, A Book for Free Spirits)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Ⅱ – 1879년

(Human, All to HumanⅡ)

서광, 도덕의 편견들에 대한 사유 – 1881년

(Daybreak, Thoughts on the Prejudices of Morality)

즐거운 지식 (The Gay Science) – 1882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를 위한 책이면서 그 누구도 위한 것이 아닌 책

(Thus Spoke Zarathustra, A Book for All and None) – 1885년

선악을 넘어서, 미래 철학을 위한 서곡 – 1886년

(Beyond Good and Evil, Prelude to a Philosophy of Future)

도덕의 계보학, 하나의 논쟁 – 1887년

(On the Genealogy of Morals , A Polemic)

바그너의 경우: 한 음악가의 문제 – 1888년

(The Case of Wagner: A Musician’s Problem)

우상의 황혼, 혹은 망치 들고 철학하는 법 – 1889년

(Twilight of the Idols, or How One Philosophizes with a Hammer)

반그리스도 (The Antichrist) – 1895년(집필은 1888년)

니체 대 바그너: 한 심리학자이 파일들로부터 – 1895년(집필은 1888년)

(Nietzsche contra Wagner : Out of the Files of a Psychologist)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나 자신이 되었는가 – 1908년(집필은 1888년)

(Ecce Homo, How One Becomes What One is)

권력의지 (The Will to Power) – 니체 사후 출간 (1882~1888년 집필

(2)『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목차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제1부

세 가지 변신에 대하여/ 덕의 교사에 대하여/ 저편의 또 다른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희열과 열정에 대하여/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산허리에 있는 나무에 대하여/ 죽음의 설교자들에 대하여/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시장터의 파리들에 대하여/ 순결에 대하여/ 벗에 대하여/ 천 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이웃 사랑에 대하여/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 아이와 결혼에 대하여/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선사하는 덕에 대하여

제2부

거울을 갖고 있는 아이/ 행복의 섬에서/ 연민의 정이 깊은 자에 대하여/ 성직자에 대하여/ 도덕군자에 대하여/ 천민들에 대하여/ 타란툴라에 대하여/ 이름 높은 현자에 대하여/ 밤의 노래/ 춤에 부친 노래/ 만가(輓歌)/ 자기극복에 대하여/ 고매한 자에 대하여/ 교양의 나라에 대하여/ 순수한 인식에 대하여/ 학자들에 대하여/ 시인에 대하여/ 크나큰 사건에 대하여/ 예언자/ 구제에 대하여/ 처세를 위한 책략에 대하여/ 더없이 고요한 시간

제3부

방랑자/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뜻에 거슬리는 행복에 대하여/ 해뜨기 전에/ 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감람산에서/ 그냥 지나쳐 가기에 대하여/ 배신자에 대하여/ 귀향/ 세 개의 악덕에 대하여/ 중력의 영에 대하여/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 춤에 부친 또 다른 노래/ 일곱 개의 봉인

제4부

꿀 봉납/ 구조를 간청하는 외침/ 왕들과의 대화/ 거머리/ 마술사/ 실직/ 가장 추악한 인간/ 자발적으로 거지가 된 자/ 그림자/ 정오에/ 환영인사/ 만찬/ 보다 높은 인간들에 대하여/ 우수의 노래/ 과학에 대하여/ 사막의 딸들 틈에서/ 각성/ 나귀제/ 명정의 노래/ 신호

7. 참고 서적

『하룻밤에 읽는 서양 사상』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2003

『한 권으로 읽는 니체』 로버트 솔로몬, 캐슬린 하긴스 지음 (고병권 옮김) 2001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 2003

자료정리:장광익 [email protected]

출처: SPR 경영연구소

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읽기 – 머리말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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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2021년이 끝나기 전에 완독해야겠다는 목표로 천천히 읽어보려고 한다. 그동안 실존 철학이니 뭐니 니체나 카뮈에 관심 많다고 했으면서 정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는 사놓고 책장에 고이 모셔뒀다. 몇 번 시도했으나 어려워 아직 내가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나 싶은데 그 뒤로 몇 년이 흐르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했는데도 역시나 여전히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이제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읽고 꼭 완독해봐야지.

여기의 순서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목차 순으로 정리했고 니체가 말하려는 의도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이해한 부분을 해석했다. 아무래도 니체의 의도를 파악하기에 나의 철학 수준이 낮기에 이해 안되는 부분은 이해 안되는 부분으로 그냥 남겨놓았다.

1.

차라투스트라는 서른이 되었을 때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 십 년동안 정신과 고독을 즐겼다. 어느 하루는 아침에 뜨는 태양을 보며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을 받아들일 존재가 있기에 행복한게 아니냐고 물었다. 십 년동안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독수리, 뱀이 아침마다 태양의 빛을 감사해왔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말하는 태양은 온 세상을 비추는 진리를 말하는 것 같다. 태양이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지는것 그 자체는 마치 공기와 같이 당연해 그 사실을 모르지만 차라투스트라와 어떤 지혜의 상징으로써 독수리와 뱀은 깨닫고 거기에 감사함까지 느끼고 있다고 한다. 많은 대중들이 그걸 모르더라도 그 자체를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이 있더라도 태양은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 실망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을거라 말한다.

<나는 베불어 주고 나누어 주려 한다. 인간들 가운데서 현명한 자들이 다시 어리석음을 기뻐하고, 가난한 자들이 다시 그들의 넉넉함을 기뻐 할 때까지 -민음사 p12> 차라투스트라는 십 년동안 쌓아둔 지혜를 베풀기 위해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이렇게 결심을 먹게 된 것은 태양을 보며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태양은 보통 떠오르는 상승의 이미지인데, 여기서는 몰락이라고 표현을 한다. <나는 그대와 마찬가지로 몰락해야 한다. 내가 저 아래로 내려가 만날 사람들이 말하듯이 -민음사 p12> 몰락의 국어사전의 의미로는 재물이나 세력 따위가 쇠하여 보잘것없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이렇게 하여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민음사 p12> 몰락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양이 내리쬐는 위에서 아래로 라는 의미로 문맥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산에서 지혜를 쌓으며 살고 있던 삶에서 내려놓고 온다는 것 자체가 차라투스트라의 모든것을 내려놓고 온다는게 몰락이 의미인지, 번역으로 했을 때 몰락이 된건지. 햇갈려서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다.

2.

차라투스트라는 그렇게 산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가는 도중에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십 년전 산에 들어갈 때 만났던 노인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때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재를 산으로 날라갔지. 그런데 오늘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날라 가려고 하는가? 방화범이 받을 처벌이 무섭지도 않단 말이지 -민음사 p13> 여기 부분에서 대체 노인이 무슨 이상한 말을 건낸건가 싶었다. 자신이 타고 남은 재를 타고 산으로 날라갔다는 말은 아마도 십 년전 산으로 들어갈 때 차라투스트라가 남은재를 들고 갔다는 말이고 남은 재는 차라투스트라가 믿고 있는 진리, 지혜를 말하는것 같다. 차라투스트라가 믿고 있는 믿음이 아무래도 어떤 계기로 큰 실망으로 인해 산으로 들어간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식어버린 믿음을 재를 의미하는거 같고 십 년간의 정신과 고독으로 생긴 새로운 지혜가 불덩이를 의미하는게 아닐지. 아마 세상에 사람들이 믿고 있는 어떠한 종교나 진리를 반박하는 지혜이므로 불덩이 같은 지혜를 다시 내려왔을 때의 탄압이 방화범을 의미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민음사 p15>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는 문장이 등장했다. 차라투스트라가 십 년동안 정신과 고독에서 깨닫는 진리가 바로 이 것으로 함축 된다.

3.

이렇게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가진 지혜를 전해주기 위해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민음사 p15> 여기서 책에서 주인공으로 차라투스트라가 설교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시장에서 십 년간 산에서 정신 수련을 한 사람이라면 몰골이나 행색이 뻔 할텐데 저렇게 이야기 하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했을거 같다. 각설하고, 여기서 그 유명한 초인 다시 말해 위버멘시가 등장한다. 요즘에는 초인이라는 번역된 말 보다는 초인으로 번역했을 때 그 의미를 다 담을 수 없어 그대로 위버멘시라고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어쨋든 그 위버멘시로 극복 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극복의 의미가 뒤에 나온 문장으로 볼 때 고난을 극복하는 것과 더불어 진화하고 성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거 같다. <벌레로 부터 인간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고 많은 점에서 아직도 벌레다. 일찍이 그대들은 원숭이였고 지금도 그 어떤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다. -p16 민음사> 의 문장을 볼 때 극복 된다는 것은 인간은 벌레에서 원숭이 그리고 인간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초인은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초인이 이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민음사 p16> 극복해야 할 초인은 여기서 대지의 뜻까지 담겨 있다. 대지란 무엇일까. 대지는 하늘나라의 반대인 땅의 의미를 담고 있는거 같다. 여기서는 아에 대놓고 그리스도교의 비판을 담고 있다. 현실을 내포하는 대지에서 삶을 내팽겨친채 신을 추종하고 하늘을 숭배하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뒤이어 나온다. <나에게 동정심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사랑한 자를 못 박은 십자가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의 동정심은 결코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이 아니다 - 민음사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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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해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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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지성들이 인류역사에 자취를 남겼지만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만큼 세계사상사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의 모든 저작들은 철학자는 물론이고 신학자 심리학자 소설가 시인 등 모든 분야의 지성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안겨줬다. 야스퍼스 하이데거 카뮈 데리다 푸코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대사상가들이 모두 그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철학과 문학비평에서 일어난 실존주의와 해체주의도 니체에서 비롯됐다.

‘신은 죽었다’라는 명구로 널리 알려진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4부로 이루어진 철학적 산문시이다. 자라투스트라가 신의 죽음을 외치고 산을 내려와 민중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과정이 힘이 넘치는 문체와 시적 표현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며 니체 사상의 중심개념인 ‘권력의지’ ‘초인’ ‘영겁회귀’등이 비유와 상징의 방법으로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의 주인공인 자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은 기원전 6~7세기경의 실존인물인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교조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제1부의 중심내용은 초인의 등장이다. 30세에 입산해 10년간 고독을 즐기던 자라투스트라가 하산, 민중들에게 ‘신은 죽었다’며 초인에 대해 설교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모든 인간적인 약점을 극복한 강한 인간을 의미하며, 생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자, 자기운명을 사랑하는 자를 말한다. 그러나 민중은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라투스트라는 친구와 동행인을 구해 그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파한다.

제2부는 권력의지에 관한 내용이다. 다시 산으로 들어간 자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사상이 왜곡돼 아류가 세상에 범람함을 깨닫고 다시 하산해 제자들에게 권력의지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권력의지란 정치적인 권력이 아니라 생명의 실재로서 자기의 생에 대한 일체의 저항을 이겨내고 부단히 강해지려는 주체적인 생존의지를 가리킨다.

제3부와 4부에는 영겁회귀가 설명돼 있다. 인간들은 나서 죽고 동물들은 왔다 가지만 세계 그 자체는 스스로의 윤회를 거듭할 뿐이라는 것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발간 당시 서구사상의 중심이었던 기독교적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반기독교적인 저작으로 받아들여져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개의 위대한 저작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 쏟아진 초기의 비판과 푸대접은 장차 있을 찬사를 예비하기 위한 것에 다름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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